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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ity/취미

데이비드 린치가 빚은 영화계의 클라인 병, 멀홀랜드 드라이브

by LeeDaSom 2025. 3. 1.

 

 최근 '컨택트'를 보고 간만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충격이라 온 신경이 들뜨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정기적으로 영화를 찾아보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어렸을 적, 거의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영화관에 갔는데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학업으로 인해 바빠지면서 영화관과 점점 멀어졌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시간에 제법 여유가 생겼다. 고등학생때까지 치열할게 공부했던 것에 대한 보상 심리일까. 학업으로 인한 경쟁의 긴장도는 대학에 들어서면서 거의 체감되지 않는다. 자연스레 정기적으로 영화를 보던 나의 습관도 돌아오고 있었다. 

 

 

 



사람의 태도는 그의 삶이 진행될 방향으로 나아가지

 

 



 오늘은 학교 도서관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 DVD를 열람했다. DVD의 좋은 점은, 단순히 영화 뿐만 아니라 영화와 관련된 INTERVIEW, HILIGHT, CAST&CREW, MUSIC VIDEO, PHOTO GALLERY, THEATRICAL TRAILER, MAKING FILM, PRODUCTION NOTE 등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Production Note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리타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다이안이라는 이름은 과연 그녀의 본명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인물일까? 영화가 지닌 미스터리의 중심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다이언의 실체가 드러나면 관객들은 혼동의 미궁으로 빠져든다. 현실이라 여겨졌던 논리적 이성은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감독이 만들어놓은 이중의 퍼즐은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총소리가 울리는 순간, 영화는 근래 어떤 영화에서도 느끼기 힘든 충격을 가져온다. 
 교묘히 얽힌 구성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단 1분도 숨쉴 수 없는 여러 갈래의 에피소드는 파멸의 점을 향해 나아간다. TV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던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영화로 제작된 후 가진 첫 시사회에서의 반응은 "데이빗 린치가 돌아왔다"였다. 지난 98년 <스트레잇스토리>는 린치의 영화라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인 휴먼드라마로 여러 논쟁을 일으키며 호평을 이끌었으나 린치 매이나들에게는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3년 뒤 그는 가장 린치다운 영화를 가지고 나타났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미스터리와 유머, 느와르가 복합되어 있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것은 평범하지 않은 '사랑'이다. 
 정체성의 상실로 '과연 그(혹은) 그녀는 누구일까?'를 가슴 조이며 쫓는 와중에도 코믹한 상황이 이어진다. 그러나 시간과 기억의 교차점인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펼쳐지는 치명적인 사랑과 증오를 느끼는 순간 관객들의 가슴은 서늘한 아픔을 느끼게 된다. 

 

 

 

 DAVID LYNCH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거 속에 갇힌 길입니다. 
대부분 그렇죠
산 정상에 홀로 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곳에서 여러 방향으로 내려다 볼 수 있죠
계곡이나 로스엔젤레스 또 그 밑의 할리우드까지
그리고 밤에는 무척 어두은 곳입니다
굴곡이 심하기 때문에 꿈에서 보이는 길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죠

등장인물이 많습니다
모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어요
우리 모두 같이 말이에요

배우들과 항상 일대 일로 얘기하려고 노력해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 뜻이 통하죠
말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표정을 읽고 서로 교감하죠
그렇게 일합니다

똑같은 것은 없어요
각각의 스토리 자체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 지를 말해줍니다.
그래서 각각의 스토리가 다른 거죠
각자 다른 방법으로 저에게 영감을 줍니다

스토리마다 길이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미리 어떤 식으로 전개할 거라고 결정하지 않습니다
스토리와 사랑에 빠지면 모든 걸 알 수 있어요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알고 그 길을 따라가는거죠
결국 제가 사랑하는 스토리에 따라 길이 달라지게 됩니다

어떤 것을 만들 때 반만 완성시킨 채 그냥 내버려두면
그것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지배하죠
매듭을 묶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과 같은데
이런 방법으로 끝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죠

로스엔젤레스의 대본 작가들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경력과 사진을 갖춘 작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명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간절히 원하는
작가들이 그만큼 많다는 거죠
제가 로스엔젤레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도시에는 밝은 분위기 뿐 아니라 창조력도 만연합니다
있는 힘을 다해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면에서 현대적 도시죠

 

데이비드 린치가 빚은 영화계의 클라인 병, 멀홀랜드 드라이브

  대게 영화를 보면, 반복 되는 장면이라든지 영화 음악이라든지 영화 소품이라든지 감독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영화의 장치들은 감독의 의도를 담기 위한 일종의 '병'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관성적으로, 각각의 장치들에는 감독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생각하고 찾기 위해 애쓴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데이비드 린치가 무의식과 의식을 구현한 장면을 병렬 구조로 배치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의식과 의식의 주체는 리타이자 다이안으로 보았다. 나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크게 두 세계로 나누었다. 첫 번째 세계는 다이안의 무의식이다. 다이안의 무의식 속에는 부푸는 꿈을 안고 이제 막 할리우드로 온 과거 자신의 모습이 '베티'로 투영되어 있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다이안 스스로는 '리타'의 모습으로 투영된다. 정체성을 잃어버렸기에 리타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베티의 도움으로 '다이안'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내고 이를 단서로 자신이 살던 집까지 가보는 등 리타는 자신의 정체성에 수렴한다. 다시 말해서, 정체성이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수렴하게 된 것이다. 리타가 파란색 열쇠를 이용해 상자를 여는 순간, 마침내 정체성은 무의식의 손으로 들어온다.

두 번째 세계는 다이안의 의식이다. '지킬 앤 하이드'에서 지킬이 하이드에게 점점 자리를 빼앗기는 것처럼 의식의 다이안은 무의식에게 마침내 정체성을 빼앗기고 권총으로 자살을 택한다. 영화 속 베티와 리타가 공연을 관람할 때 한 가수가 노래를 하다 쓰러지지만 노래 소리는 계속 들리는데, 이 장면이 다이안의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정체성) 없는 트럼펫인 가수가 쓰러지는 장면이 곧 의식의 다이안이 죽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내가 주목한 또다른 장치는 바로 '파란 열쇠'이다. 의식의 세계에서 다이안은 카밀라를 죽여달라고 요청하며 돈을 건넨다. 그러자 그는 돈을 받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말과 더불어 파란 열쇠를 찾으라는 말을 한다. 이후 다이안의 집에서 파란 열쇠가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의식의 파란 키는 매우 현실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무의식의 파란 키는 어떤가? 무의식의 세계에서 누가 파란 키를 가지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자. 바로 기억 상실증에 걸린 리타이다. 리타의 가방 속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돈과 파란 키가 함께 들어 있었다. (이것이 의식의 다이안과 무의식의 리타가 동일 인물임을 다시 한 번 의미한다.) 그러나 리타가 가진 키는 다이안이 가진 것에 비해 추상적인 형태를 띤다. 이는 리타의 세계가 무의식이고 다이안의 세계가 의식임을 상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전 침대에 누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영화의 장치들에 감독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의 편견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비드 린치는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은 수학적 모델을 영화의 형태로 재현한 것이다. 클라인 병은 뫼비우스 띠의 4차원 버전으로 외관은 병처럼 보이지만 밀폐된 부피를 가지지 않아 액체 따위를 담을 수 없다. 즉, 데이비드 린치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영화계의 클라인 병을 빚은 것이다. 감독의 의도나 메시지 자체는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영화 속에 담긴 의도나 메시지를 꺼낼 수 없다. 꺼낸다는 것은 사전에 담아두는 행위가 있어야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이고 클라인 병은 그런 의도를 담아낼 수가 없으니까. 설령 영화 속에서 메시지를 꺼냈다고 한다면 우리는 클라인 병을 온전하게 본 것이 아니라 3차원으로 일정 부분의 데이터가 손실된 클라인 병을 본 것이다.

 우리가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며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딱 한 가지,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클라인 병 속에서 무한한 공간을 마음껏 유영하기.